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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atures/아티스트 스토리

커트 코베인을 기리며, 애버딘의 소년이 너바나가 되기까지 [1편]

by 기어 포레스트 2026.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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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시애틀은 늘 비가 온다

 

© Photo by https://imgur.com/a/fAU8m#Gkpl0JJ
© Photo by https://imgur.com/a/fAU8m#Gkpl0JJ

 

  4월 5일이 지나갔다. 매년 이맘때면 이상하게 귀가 먹먹해진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너바나 플레이리스트가 켜져 있다. 아마 그게 음악이 하는 일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온다.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 시애틀의 레이크 워싱턴 대로변 자택 온실에서였다. 시신이 발견된 건 사흘 뒤인 4월 8일이었고, 그를 찾아낸 건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러 온 전기 기사였다.

 

  고작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록 스타 중 하나였고,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지쳐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 시리즈는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는 글이다. 3편에 걸쳐, 커트 코베인이라는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갔는지를 따라가볼 것이다. 1편은 시작이다. 애버딘의 소년 이야기.

 

 

비가 오는 마을, 애버딘

 

© 어린 시절의 커트 코베인 모습, Reddit
© 어린 시절의 커트 코베인 모습, Reddit

 

  커트 도널드 코베인은 1967년 2월 20일,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태어났다. 애버딘은 시애틀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벌목 도시다. 태평양 연안의 눅눅한 공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겨울비, 제재소가 문을 닫으면서 서서히 꺼져가던 경제.

 

  코베인 스스로도 훗날 이 동네를 "중산층인 척하는 화이트 트래시 동네"라고 불렀다. 애정과 경멸이 동시에 담긴 표현이었다. 거기서 자랐다는 걸 부끄러워하면서도, 결국 그 마을의 냄새가 그의 음악 전부에 스며들었다.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코베인의 유서에는 일곱 살 때부터 인간 전반에 대한 혐오가 시작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혼의 충격이 그만큼 깊었다는 뜻이다. 그 이후로 코베인은 이 친척 집, 저 친척 집을 전전했다. 한동안은 다리 아래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의 기억이 훗날 Something in the Way가 됐다.

 

© 어린 시절의 커트 코베인 모습2, Reddit
© 어린 시절의 커트 코베인 모습, Reddit

 

  기타를 처음 잡은 건 열네 살 때였다. 인디 시절의 코베인은 동료 뮤지션들 사이에서 하루 최소 아홉 시간 이상 연습실에 박혀 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 청년이 나중에 세상에서 가장 게을러 보이는 록 스타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건 진짜 게으름이 아니었다. 무기력이었다.

 

 

606달러와 샌드위치 한 개

 

© Kurt Cobain playing drums at an assembly at Montesano High School, Montesano, Washington, US. 1981 Wikipedia
© Kurt Cobain playing drums at an assembly at Montesano High School, Montesano, Washington, US. 1981 Wikipedia

 

  1987년, 코베인은 고등학교 동창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애버딘에서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름을 정하는 데도 한참 걸렸다. Skid Row, Pen Cap Chew, Bliss, Ted Ed Fred.

 

  코베인은 결국 1988년 3월, 워싱턴주 타코마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평균적인 펑크 밴드 이름 대신 아름답고 좋은 이름을 원했다"며 공식적인 밴드명을 Nirvana라 정했다. 닐 영의 영향을 받은 헤비한 사운드에, 비틀즈를 사랑하는 사람의 팝 감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너바나(Nirvana)'의 어원

 

  너바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단어로, 커트 코베인은 동양 철학이나 불교적 개념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에서 너바나는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이나 열반의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일기장에 "너바나는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외계와의 단절이다"라는 식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펑크 밴드들은 'Angry Samoans'나 'The Germs'처럼 의도적으로 불쾌하거나 공격적이고,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선호했다. 코베인은 이런 전형적인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거칠고 시끄러운 그들의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단어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평온함, 고요함에 매력을 느꼈다.

 

© About A Girl (Remastered) · Nirvana

 

  데뷔 앨범 Bleach는 1989년에 나왔다. 녹음 비용이 606달러였다. 당시 코베인이 청소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당시 여자친구 트레이시 마란더에게 빌린 돈을 합친 것이었다. 음식도 부족해서 스튜디오에 샌드위치를 사들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606달러짜리 앨범은 훗날 전 세계에서 수백만 장 팔리게 된다.

 

  Bleach의 사운드는 블랙 사바스, 멜빈스, 블랙 플래그의 영향을 짙게 받은 헤비한 '그런지'였다. 거칠고 둔탁하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질감이 있다. 그런데 그 안에 명곡 About a Girl이 있었다.

 

  비틀즈처럼 달콤하고, 멜로디가 깔끔한 팝 록. 이 곡 하나가 코베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날카롭게 찌르면서도, 결국엔 아름다운 것을 원하는 사람.

 

  Bleach는 안타깝게도 크게 팔리지 않았다. 영국 록 음악지 NME는 이 앨범을 "Sub Pop이 지금까지 발굴한 가장 크고 강렬한 사운드"라고 썼고, 소규모 유럽 투어를 통해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이 너바나를 알게 되는 건 아직 2년 뒤의 일이었다.

 

 

마치며,

 

 

  애버딘을 생각한다. 비가 오는 마을, 다리 아래에서 잠을 자던 열다섯 살짜리. 606달러를 긁어모아 스튜디오에 들어가던 스물두 살짜리.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가 됐다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사라졌다.

 

  4월 5일이 지나갔다. 오늘도 비가 올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Nevermind의 탄생과, 그 폭발이 코베인을 어떻게 삼켜버렸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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